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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마사이 전사 |
Weekly 3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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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 私の夫はマサイ戦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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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 나카마츠 마키 (永松真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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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 신쵸샤 (新潮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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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년도 |
: 2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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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 23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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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마츠 마키 (永松真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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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마츠 마키(永松真紀)
1967년 후쿠오카 출생. 많은 단골을 가진 프로 여행인솔인.
96년부터 본격적으로 케냐에 이주해서 2005년 4월, 마사이 전사 쟈크슨과 결혼해서 제2부인이 되었다. 최근엔 좀 더 아프리카를 잘 알기 위한 스터디 투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http://www.masai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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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제1장 케냐에 내린 날 - 우연히 들은 ‘바람을 탄 라이온’ - 21세, 첫 케냐 - 어느 일본 여성과의 만남 등.
제2장 보이기 시작한 진정한 케냐 - 나를 포로로 한 ‘마타토우’ - 마타토우 경영자가 된다. - 이 나라가 싫어진다. 등
제3장 쟈크슨과의 만남 - 마사이의 매력 - 전통문화로의 자부 등
제4장 인생 최대의 결단 -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다’ - 피와 신이 정했다. - 인생최대의 결단 등
제5장 마사이에 시집가는 날 - 느끼기 시작한 소외감 - 일부다처제의 의미 - 고민이 끊임 없는 성생활 등
제6장 새로운 생활의 시작. - 아내의 증거의 집을 세운다. - 결혼을 인정받지 못한가? - 신혼여행, 처음으로 본 바다 등 ▣ Short Summary 결혼지참금은 소 4마리! 신혼살림은 호리병박 4개! 그리고 내가 마사이 전사의 2번째 부인이 된 이유는??? 적도 바로 밑에 있는 케냐 공화국. 수도 나이로비에서 멀리 떨어져 야생동물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반나의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이 저자의 신혼집이다. 남편의 나이는 30세로 추정됨. 7마리의 사자와 코끼리를 쏘아 죽인 용맹무상한 진정한 전사이다. 샤워시설도 화장실도, 전기 조차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 따뜻한 마사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엮었다.
<저자 머리말> 적도 바로 아래의 아프리카 동해안에 위치한 케냐 공화국. 일본에서라면 갈아타고 하는 덕분에 하루는 족히 걸리는 먼 나라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뒤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그 동안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다. 그리고 지금 케냐에서도 전통적인 생활을 한다는 마사이 전사의 제2부인이 되어, 수도 나이로비와 남편 쟈크슨이 사는 케냐의 서부 작은 마을 에나이보루크룸을 오가며 세계를 도는 여행가이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일본인으로도 케냐인으로도 마사이의 아내로도 그런 비일상적인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되어버린 것은 분명하다. 덕분에 일도 결혼생활도 충실하면서 지금까지의 인생 속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적은,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로의 결혼을 인정해 준 마사이 가족에게 감사한다. 처음 여행객으로 케냐를 방문했을 때, 설마 일본에서 이렇게 먼 이 땅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반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사파리 투어에 참가해서 아프리카의 대 자연에 감동하고 ‘멋진 나라였다’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이 뒤돌아보니 몇 번이고 케냐를 향하게 되어버렸고, 체류기간이 점점 길어져 갔다. 여행가이드라는 업무적 특성상, 여러 나라를 가봤는데 왜 케냐였을까? 다른 곳 중에 더 살고 싶은 곳은 없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왜 케냐였어’라고 묻는데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감히 케냐에 반해버린 매력을 하나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내기 편한 기후가 아닐까? 케냐를 알지 못하는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더워서 힘들지’라고 자주 듣지만 내가 거점으로 하고 있는 수도 나이로비는 고도 약 1700m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 연간 평균기온이 18도 전후 정도이다. 일본의 봄이나 가을처럼 선선한 기후로, 아무리 더워도 30도를 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위에 약한 나는 오히려 훨씬 살기 좋았다. 일본의 습한 여름에 비해 바람도 시원해서 불쾌지수가 상당히 낮았다. 그것이 케냐에서 살고 싶어진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 남편이 살고 있는 케냐 서부의 고원인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는 비가 적고, 야생동물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반나 지대에도 있다. 마사이 사람들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장소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대자연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아프리카에 매료된 한 사람이었다. 단 자주 가면 갈수록, 체제기간이 길면 길수록 케냐의 좋은 점 나쁜 점이 보여온다. 마음 설레는 만남이나 사건도 많지만 너무 싫은 일들도 많이 있었다. 케냐의 앞과 뒤를 알아버린 지금, 나에게 있어 케냐는 너무 좋아하는 나라임과 동시에 너무 싫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냐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케냐에는 특별한 흡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결혼을 하기도 했고, 나에게 케냐는 타인의 일이 아닌 나라, 즉 내 나라로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버렸다. 그렇다면 왜 일본인이면서 마사이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제1부인도 아닌 제2 부인으로! 결혼을 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케냐인이 ‘교육을 받은 마사이도 아니라 진짜 마사이 전사와 결혼하다니 믿을 수 없다. 미쳤다’라고 까지 반대를 했다. 그래도 나와 마사이 생활은 달랐고, 연인은 물론 부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할 때였다. 물론 나도 케냐에서의 생활이 길었기 때문에 마사이의 전통문화나 생활습관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일부다처제에 대해서도 편견은 없었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 생각해왔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부터 남편을 동경하긴 했지만 연애대상으로는 보지 않았고 설마 결혼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결혼을 생각할 때 큰 장해가 된 것은 일과의 병립이었다. 여행가이드라는 일은 내게 있어 삶의 보람이기 때문에 결혼을 위해 일을 포기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전통 속에 살아가는 마사이와 함께 지금부터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생활을 어려울 것이다. 그런 내가 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마사이의 제2부인이 되었을까? 그러면서 왜 일은 계속 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한 번 너무 싫어서 떠났던 케냐에 왜 다시 돌아와, 케냐에 평생 관여되겠다는 각오를 한 것일까? 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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