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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께쓰 Weekly 281호
원제 : バケツ
저자 : 키타지마 유끼노리 (北島行德)
출판사 : 문예춘추 (文藝春秋)
출판년도 : 200509
페이지 : 256쪽
 
일본도서 > 소설
키타지마 유끼노리 (北島行德)
1965년생. 고등학교 중퇴 후,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91년 장애인 격투단체 를 만든다. 그 후 매일중학생신문의 계약 기자가 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무적의 핸디캡>(고단샤 논픽션상 수상작)이 있다.
 
▣ Short Summary

주인공 가미시마는 몸집이 크지만 소심한 청년이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예민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설사를 한다. 가미시마는 그가 일하던 아동보호소에서 만나게 된,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청년 바께쓰와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 언뜻 ‘훌륭한 선생님과 불쌍하지만 착한 아이와의 감동스토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바께쓰라는 이름은 그가 보호시설에 들어올 때, 바께쓰(양동이)에다가 입을 옷을 담고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에게는 정신지체와 도벽이 있어서 가족들은 그를 포기하였다. 가미시마도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보호시설에서 퇴직한 뒤 선탠전문 피부관리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무허가 보육원을 개설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바께쓰는 가미시마의 돈을 훔쳐서 가출하는데…… 이 책의 제1화에서는 난처한 가미시마와 도망간 바께쓰와의 기적적인 재회가 그려진다. 제2화는 심기일전해서 선탠 미용실과 무허가 보육원을 개설하게 된 가미시마의 이야기, 제3화는 두 사람이 새로 심부름 센터를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상세한 내용-

‘바께쓰’는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고 아동보호소에서 성장한 한 소년의 별명이다. 혼자 살고 있던 보호소의 지도원 가미시마는 이 바께쓰를 데려와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 언뜻 “훌륭한 선생님과 약하지만 마음이 순한 아이와의 감동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바께스에게는 도벽과 게으름을 피우는 버릇이 있고, 지적 발달에는 문제가 있지만 핑계 대고 거짓말을 하는 기술은 수준급이다. 크게 나쁜 짓은 못하지만 충분히 문제아다.
한편 가미시마에게도 문제는 있다. 남의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있어서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바로 설사를 한다. 그리고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해서 아동보호소를 그만둔 후에도 선탠전문 피부관리실 경영, 무허가 보육원 경영 등 다양한 창업을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해버린다. 게다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조사도 안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바께쓰보다 문제가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가미시마는 바께쓰의 독립을 돕기 위해 그를 맡아 키우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씩 바께쓰와의 공동생활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바께쓰가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배급소의 숙소로 들어간다고 선언하자, 가미시마는 기뻐하면서도 바로 서운하게 생각해서 막으려고 하기도 한다.

바께쓰와 가미시마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도 독특하다. 가미시마 일의 성격상 복지나 보육관계의 일을 하는 사람, 도움을 받는 장애인과 고령자, 미혼모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은 언뜻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순수, 선량, 순진’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호 서비스업을 시작한 그를 찾아온 할아버지는 여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가미시마에게 여장을 도와줄 것을 의뢰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잘 생각해 보면 ‘시설에 있는 아이와 장애인 = 마음이 순수하다’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 = 고결하고 인격이 원만하다’라는 생각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뿐이다. 우리는 흔히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과 이미지를 사회적인 약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뿐이다..
약하지만 교활한 바께쓰와 비참한 가미시마를 비롯해서 3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근본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한심한 사람들인데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다들 ‘나만 잘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바께쓰 때문에 상당히 피해를 받으면서도 그 생활을 즐기고 있는 가미시마처럼 그들은 남을 밀어내기를 서투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끝내 손해를 보게 된다.

저자는 복지의 이상적인 모습이나 장애인과 사회의 관련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이 소설은 사회와 복지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의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약자에게 냉정한 지금 사회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거나, 복지와 보육시스템이 모순을 지적하는 등의 직설적인 메시지는 없다. 다만 여기서 소개된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독자들은 어느새 저자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작지만 ‘감동을 강제하는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보다 훨씬 무겁고 강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