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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배우는 사교성이 좋아지는 마음의 습관 Weekly 110호
원제 : いつのまにか人づきあいがうまくなる心の習慣
저자 : 이시구로 마리로즈 (石黑 マリ-ロ-ズ)
출판사 : PHP연구소 (PHP硏究所)
출판년도 : 020927
페이지 : 153쪽
 
일본도서 > 기타
이시구로 마리로즈 (石黑 マリ-ロ-ズ)
1943년 레바논 출생. 이라크 왕족의 피를 이어받았다. 성 요셉 대학 철학과 졸업. 아시티츄 카톨릭대학 수료. 외교관의 어학 교수와 쿠웨이트 왕실 교사 등을 역임. 1972년 일본으로 와서 다음해 일본인 실업가와 결혼. 1983년 레바논 문화 교육 센터 설립, 관장이 된다. 사회학과 언어학의 선구자로서 오사카(大阪)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 현재는 에이와(英和) 대학 교수, 오사카(大阪) 교육 대학원 강사. 해외에 자주 나가고 미국에서는 많은 청소년 형무소를 위문. 1989년 코베시(神戶市)의 『국제 문화 교류 상』을 수상.
 

▣목차
사랑의 장 / 나그네의 장 / 과오의 장 / 은혜의 장 / 진리의 장 / 행복의 장 / 사명의 장 / 가족의 장 / 용서의 장

▣내용
친구, 이웃, 직장, 부부, 부모 자식... 당신은 『사교성』이 좋은가?
인간이 진실로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비결이 가득 들어있는 성서가 말하는 아홉 가지 이야기!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 사람의 사이에서 얼마나 양호한 관계를 구축해 가는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서는 『사교성』에 대한 지혜를 수 천년 옛날부터 계속 읽혀 온 서양의 고전인 『성서』에서 배운다.
사랑의 애절함, 길을 잃고 헤매는 인간의 천성, 행복의 비결,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 등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소중한 것들을 성서의 지혜에서 배운다.
총 9장의 구성으로 사랑의 장 / 나그네의 장 / 과오의 장 / 은혜의 장 / 진리의 장 / 행복의 장 / 사명의 장 / 가족의 장 / 용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장』에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는 인생의 황금 룰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나그네의 장』에서는 에리코에의 길에서 노상강도에게 습격 당한 나그네를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과오의 장』에서는 돌아온 방탕한 자식을 따뜻하게 맞아 준 부모의 이야기, 『은혜의 장』에서는 찬미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탄생 비화 등, 성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고 『사랑』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크리스트교 문화의 상식』『크리스트교 영어의 상식』등의 작품으로 구미 문화와 영어 표현 속에 살아 있는 크리스트교의 사고 방식과 배경이 된 성서의 이야기를 소개해 온 저자의 최근 작품이다. 『마음의 교육』이 주목되는 가운데 행복의 열쇠를 쥐는 『마음의 습관』에 대해서 깊게 탐구한다.

▶『용서의 장』 중의 『인간은 몇 번까지 용서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는 정말 실망스럽게도 『이상한 사람』이 많이 있다. 언제나 일에 트집을 잡는 상사,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라든지, 이상한 소문을 퍼트린다든지... 당신의 뇌리에도 무심결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부처같은 사람도 세 번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계속 되는 실례에는 누구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람은 이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정말 인간적인 이 고민에 대해서 예수에게 상담을 한 사람은 제자인 베드로였다. 그는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 형제가 저에게 죄를 범했다면 몇 번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일곱 번일까요?』(마태 복음 18장 21절)@
당시 유대교에서도 상대에 대한 용서는 『세 번』까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 『일곱 번』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베드로는 물었던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이른 번까지 용서해라』(마태 복음 18장 22절)
물론 구체적인 회수를 룰로서 설정한 것은 아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있어서 『일곱』은 신이 천지 창조를 칠일만에 완성했듯이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그 칠의 칠십 배라는 것은 궁극적인 『무한』을 의미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인간에게도 무한하게 용서하라는 것이다.